“인터뷰? 바쁜데..겸사겸사 점심이나 먹을까?”
그렇게 시작되었다. BM 코리아 첫 번째 뉴스레터의 ‘화제의 인물’, ‘집중 포커스’는 단연, 2010년 “올해의 BMer”에 빛나는 이윤근 이사님이다.
사실 마주하고 앉을 때까지 무엇을 여쭤볼지 쉽게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원래 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어지간해서는 질문 잘 안 던지던 체질인지라, 홍보를 업으로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PPQA 질문 만드는 일인 나에게 이사님께 질문이라니.. 1년 가까이 일하면서 한 번도 이사님과 관련된 프로젝트는 해 본 적이 없고 자리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지라 (게다가 non-smoker인지라 더욱 서먹한..) 무엇을 여쭤 보아야 할지.. 더욱 더 난감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2009년 인턴시절, 화장실 세면대에서 허리를 숙이고 양치질을 하는데도 하체가 거의 나의 가슴까지 올라오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역시 서양 사람은 다리가 정말 길어’라고 생각하던 찰나, 그 ‘서양사람’이 천천히 허리를 펴자 이윤근 이사님(당시에는 부장님)이었던 것이 이사님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내 머리 속의 기억이다. 그런 기억은 논외로 하고.. BM의 첫 번째 뉴스레터를 위해, 이사님과 칼국수 집에 마주 앉았다.
“자, 이사님 그냥 처음부터 지금까지 술술 말씀해주세요”
이게 과연 홍보인이 던질 질문이란 말인가? 인터뷰라기보다는, 전형적인 디렉터와 사원의 대화로 시작하여 이사님께서는 홍보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지금까지 히스토리를 찬찬히 풀어나가기 시작하신다.
처음에는 IT 관련 클라이언트들을 주로 상대하는 작은 PR 대행사에 입사, 국내에 벤처 열풍이 가시면서 이사님께서는 곧 퇴사를 결심하시고 오길비 PR을 거쳐 SMC로 이직, 볼보건설기계코리아를 담당하며 큰 인정을 받게 되셨다고 한다.
“뭐, 누가 맡아도 성공할 클라이언트였지. 매력적인 소재가 많았으니까”
국내 기업의 글로벌 진출 열풍이 한창일 때, 반대로 해외의 글로벌 기업이 우리나라 공장을 생산거점으로 삼은 것은 누가 맡아도 ‘대박’인 PR 소재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듯 무심하게, 당시 “하루 한 번 이상 클라이언트와 통화를 하자.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기자를 만나자.”라는 철칙을 지킨 것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듯 덤덤하게 말씀하신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미디어 미팅을 하면 두 달 반쯤 되면 담당기자를 모두 만나게 되지. 그럼 또 다시 처음부터 한 명씩 시작하는거야…”
이번 주는 추워서 귀찮고, 다음 주는 바빠서 귀찮고, 한 주 한 주 미루다 보면 내가 아쉬운 상황이 아니라면 사실 이런 목표 실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바로 느껴졌다. 그렇지만 꾸준히 하셨다고 한다. 당시 볼보건설기계코리아를 중앙일보에서 가장 많이 커버된 외국 기업으로 올려 두시고, 이사님은 변화에 목말라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그리고 SMC에서 얼마 간 더 일한 후 BAT를 거쳐 BM으로 오게 된다.
“외국계기업 국내 홍보만 하다 보니 국내 대기업은 어떻게 해외 홍보를 하는지 보고 싶었지..”
그것이 이유였다. 아니나 다를까, 입사 하자마자 당시 LG전자의 스칼렛 TV 글로벌 런칭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매일 새벽 야근에도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셨단다. 그렇게 시작되어 지금까지, 늘 LG 전자와 함께하며 어느덧 과장에서 지금의 “224(Two-Two-Four)!”, 이 이사님이 되셨다.
마치 ‘과외요? 교과서에만 충실했어요’라는 멘트를 무심하게 날리는 전국 1등 학생의 인터뷰 같다. 이렇게 별 것 아닌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그래도 2년 전 내가 BM에 인턴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 부장 승진을 하셨다며 승진자 턱을 내시던 분이 1년 만에 다시 왔더니 이번에는 이사가 되었다며 또 다시 승진턱을 내시는데, 이러한 분에게 어찌 배울 점이 없을까. 대략 다음과 같지 않을까 싶다.
“날 그냥 가만히 두시죠”
조금 과장해서 지은 제목이지만, SMC 면접 때 실제로 ‘내 맘대로 좀 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대리였던 당시로서는 당돌하기 그지 없는 멘트를 ‘날리셨다’고 한다. 일 못하는 사람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정말 어이 없기 그지 없겠지만, 이런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는 건, 그 말을 책임지기 위해 남보다 훨씬 잘 해야 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사님도 내 어카운트, 프로젝트의 일을 ‘우리는 컨설팅 하는 입장이니까 여기까지만’이라 생각하지 말고, 내가 직접 끌고 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 하신다. 흔히 들을 법한 조언이지만, 왠지 이사님에게서는 그 말을 들으면서 ‘흠…역시’라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새 비즈니스를 끌고 오는 것도 능력이지만 기존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를 가져 오는 것도 능력
어떻게 보면 기존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를 가져 오는 것이 뉴 비즈니스를 가지고 오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단, 한 번의 PT에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쌓인 신뢰가 프로젝트 수주의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이사님이 LG전자를 이끌어오면서 높은 평가를 받으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사님은 LG에 갈 때마다, 지금의 담당 클라이언트뿐 만이 아니라 나, 우리 팀, 나아가 BM의 명성을 높여 줄 수 있는 사람은 또 누가 있을까를 늘 염두에 두신다고 한다. 이런 마인드도 사실 사원•대리 시절부터 내 고객사 일은 내가 책임진다는 정신이 있었던 덕분이 아닐까?
운도 무시할 수 없다. 성공에는 운도 따라야 한다는 말. 여기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사님 말씀으로는 훌륭한 이야기 거리를 가진볼보를 맡은 덕분에, 처음 BM에 입사하자 마자 대형 프로젝트였던 스칼렛 TV를 맡은 덕분에 인정 받기도 수월했다고 한다.
“다 운이 좋았던 덕분이지”라고 덤덤하게 말씀하시지만 어디 그것뿐이랴. 준비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좋은 기회가 찾아와도 그것을 붙잡을 수가 없기 마련이다.
“이윤근이 나간다면 그 회사 인사 체계에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겠다”
이사님이 볼보를 담당하던 시절 클라이언트에게 들은 피드백이라고 한다. 컨설팅 에이전시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큰 찬사가 어디 있을까. 이제 입사 9개월을 막 넘긴 나에게, 슬슬 내 한계와 약점이 보이면서 자신감이 바닥을 찍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을 때, 이사님과의 짧은 점심식사는 나에게 많은 인사이트를 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 기자를 만나겠다던지, 한 달에 한 번 기고문 피칭을 하겠다던지, 아니면 세 달 안에 혼자서 인터뷰 브리핑을 뚝딱 만들 수준이 되겠다던지, 무엇이든 목표 하나 제대로 세워 놓고 달려들어야겠다. 책상 앞에 앉아서 고민만 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한 시간 남짓한 점심시간 사이에, 이사님은 어느덧 오며 가며 마주치던 서먹한 보스에서 조언이 필요하면 달려가고 싶은 조금은 높으신 선배님으로 바뀌어 있었다.